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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장밋빛 비밀의 도시, 요르단 페트라 - 시간을 깎아 만든 나바테아인의 유산

by 아이mac 2025.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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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페트라: 잃어버린 도시를 찾아서

요르단 남서부의 깊은 사막 협곡 속에 자리한 **페트라(Petra)**는 '바위(Rock)'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이름처럼, 붉은 사암(砂岩) 절벽을 통째로 깎아 만든 경이로운 고대 도시다. 기원전 6세기경 아라비아 유목민인 나바테아인(Nabataeans)이 건설한 이곳은 한때 동서양 교역로의 중심지로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며 번영을 누렸다.

하지만 서기 106년 로마 제국에 합병되고, 이후 지진과 새로운 해상 교역로의 등장으로 점차 쇠퇴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약 천 년간 서구 세계에 잊혔던 페트라는 1812년 스위스 탐험가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하르트(Johann Ludwig Burckhardt)**에 의해 극적으로 재발견되며 '잃어버린 도시'라는 신비로운 별명을 얻게 되었다.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고, 2007년에는 신(新)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선정되며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II. 시크(Siq) 협곡: 시간 여행의 통로

페트라를 방문하는 여정은 곧 나바테아 문명으로의 시간 여행이다. 이 여행은 좁고 긴 자연 협곡인 **시크(Siq)**를 통과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 천연 요새: 길이 약 1.2km에 달하는 시크는 수백 미터 높이의 붉은 사암 절벽이 양옆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폭은 좁은 곳은 3m가 채 되지 않는다. 이 자연 방어 시설은 외부의 침입을 막는 천연 요새의 역할을 했다.
  • 나바테아의 수로 기술: 단순히 길에 그치지 않는다. 시크의 양쪽 벽면을 자세히 보면 정교하게 깎인 수로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사막 지역에 도시를 세운 나바테아인들은 이 수로를 통해 주변 '모세의 샘' 등에서 물을 끌어와 도시 전체에 공급하는 뛰어난 수자원 관리 및 공학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시크의 굽이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마침내 협곡의 끝에서 강렬한 햇빛과 함께 장밋빛 바위산에 새겨진 경이로운 건축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III. 알-카즈네 (Al-Khazneh): 페트라의 얼굴, 보물 창고

시크를 빠져나와 처음 마주하게 되는 **알-카즈네(Al-Khazneh)**는 페트라를 대표하는 상징이자, 이 도시의 정수이다. '보물 창고'라는 뜻의 알-카즈네는 그 이름처럼 오랫동안 해적이나 파라오의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왔다.

  • 건축의 미학: 높이 약 43m, 너비 약 30m의 이 거대한 건축물은 바위를 깎아 만든 것(Rock-Cut Architecture)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코린트 양식의 기둥, 정교한 부조, 신화 속 인물 조각들로 가득하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건물이 나바테아 왕 아레타스 3세의 무덤이거나 신전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 문화 융합: 알-카즈네의 건축 양식에는 나바테아 특유의 아랍 문화와 함께 이집트, 헬레니즘(그리스)의 요소가 절묘하게 융합되어 있어, 당시 페트라가 국제적인 교역의 중심지였음을 보여준다.

IV. 페트라의 심장부: 왕릉과 수도원까지의 여정

알-카즈네는 페트라 관광의 시작일 뿐, 내부로 더 들어가면 나바테아 문명의 광활한 영역이 펼쳐진다.

1. 파사드 거리와 로마 극장: 알-카즈네를 지나면 수많은 묘비들이 줄지어 있는 파사드 거리가 나온다. 이어서 고대 도시의 중심부에 위치한 로마식 원형 극장을 만날 수 있다. 바위를 깎아 만든 이 극장은 6천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었으며, 나바테아인들이 로마 문화의 영향을 받아들였음을 증명한다.

2. 왕들의 무덤 (Royal Tombs): 언덕 비탈을 따라 장엄하게 늘어선 거대한 무덤들이다. 특히 우르네 무덤(Urn Tomb) 등은 그 규모와 정교함에서 왕실 무덤으로 추정되며, 햇빛의 각도에 따라 사암의 붉은색, 주황색, 노란색 등이 신비롭게 변하며 '장밋빛 도시'라는 별명을 실감하게 한다.

3. 알-데이르 (Al-Deir) 수도원: 페트라 유적지 가장 깊은 곳, 약 800개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도달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한다. '수도원'이라는 뜻의 알-데이르는 알-카즈네와 비슷한 디자인이지만 폭 50m, 높이 45m로 더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이곳은 원래 신전이었으나 후대에 비잔틴 교회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알-데이르에 올라 바라보는 광활한 사막과 바위산의 풍경은 페트라 트레킹의 고된 여정을 보상하는 최고의 장관이다.

V. 나바테아인의 지혜와 건축 기술

나바테아인들이 남긴 유적은 단순한 예술품을 넘어선다.

  • 암벽 건축: 바위산을 외부에서부터 깎아 들어가 건물을 만든 독특한 건축 방식은 풍화에 강하고 내구성이 뛰어나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완벽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 물 관리 시스템: 앞서 언급된 시크의 수로 외에도, 페트라 곳곳에는 빗물을 모으고 저장하는 저수 시설들이 남아있다. 이들의 첨단 수리 공학 기술이야말로 사막 한가운데서 도시 문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힘이었다.

페트라 방문은 인류의 지혜와 자연의 위대함이 만난 장소에서 과거의 번영과 몰락을 동시에 경험하는 잊을 수 없는 체험이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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